확실히 기억은 잘 안나지만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PC통신 역사 한번 알아봅시다.^^

이상하게 컴퓨터가 그저 신기하고 좋아보였던 저는 2학년때인가 컴퓨터 학원을 가겠다고 졸랐고 마이컴이란 잡지를 정기 구독하면서(게임잡지는 왠지 엄마한테 죄책감이…..하지만 마이컴도 부록이 있었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컴퓨터를 2년간 열심히 명절때마다 세배를 하여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당시 첫 컴퓨터는 현대컴퓨터에서 나온 8088XT 컴퓨터였으며 4.xx mhz이었던 대부분의 8086보다 훨 빠른 10mhz를 자랑하며 일반 허큘레스 비디오 카드가 아닌 후면 딥스위치를 사용하여 하드웨어적으로 CGA를 모노크롬으로 지원하는 가히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컴퓨터였죠. 무려 모니터도 요새 볼록이 모니터처럼 각종 조절 노브가 오른쪽에 붙어있지 않고 하단에 달린거루요!! 매일 누나랑 같이 3인용 빌딩 부수기 공룡게임이나 보글보글, 단순한 비프음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작대기 나오는 비행기 게임 등을 하며 혼돈과 혼란 그리고 희열을 느꼈으며 요새 게임불감증에 걸린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nurie 문제는 어쩌다 우연히 1200bps짜리 내장형 모뎀을 얻고나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아버지는 사업에 필요하신지 하이텔 단말기를 임대해서 갖고 계셨었죠..ㅎㅎ 얼마나 부러웠는지 아버지 사무실에만 가면 그것만 갖고 놀았다는.. 위에 있는 누리에 에뮬도 있었으며 당시 하늘소라는 곳에서 만든 이야기는 지금에 익스플로어라고 할 정도로 대부분 사용하였던 에뮬레이터죠 ㅋ 하늘소에서는 나중에 여러가지 괜찮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왔는데 생각나는건 그림그리는 툴이 있었고 그것 땜에 마우스를 구입하게 된 원인이었죠.ㅋㅋ당시엔 캡춰가 없어서 갈무리란 이름으로 글을 복사하였으며 그림을 넣지 못해서 ANSI를 이용해 에니메이션을 만드는 등 어찌보면 지금의 기술의 발달이 현실과 점점 같아지며 그때에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를 못본다는게 아쉽네요.

갑자기 생각이 난건 걍 술한잔 했는데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삼형제는 머하고 지낼까 궁금해서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아 유니텔은 좀 나중에 나왔던 걸로 기억하구요 KIS라고 한국전력인가에서 운영하는 BBS가 또 있었죠.ㅋㅋ 삼형제는(하이텔은 케텔시절은 무료였음 ㅋㅋ) 유료여서 KIS를 많이 이용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자 여기서 검색을 해봅니다.


하이텔은 1986년 11월 1일 한국경제신문 뉴미디어국에서 한국 경제 프레스텔(Korea Economic Prestel)을 개통하여 1987년 4월 15일 한경KETEL로 변경, 1987년 5월 1일에는 한경KETEL 영문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1989년 11월 케텔(KETEL)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경뉴스속보와 대형 BBS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전자게시판(큰마을), 전자우편, 채팅, 동호회(현재의 카페), 온라인 바둑 등을 제공하였다. 1991년 12월 9일 한국통신과 합작으로 한국PC통신(주)을 설립한 후 1992년 3월 서비스 이름을 코텔(KORTEL)로 변경하고 같은 해 7월에 하이텔(HiTEL)로 변경하였다. 1999년부터 xDSL 기술의 보급과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하이텔을 운영하던 KTH는 2007년 2월 28일자로, 하이텔 VT 서비스를 전격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기존에 제공되어 오던 하이텔의 웹서비스는 약 1년 뒤인 2004년 7월에 파란으로 통폐합되었으며, 이후 파란은 2012년 8월, 다음에 다시 통폐합되었다.

나우누리는 나우콤에서 1994년 10월 서비스한 PC통신망이다. 1994년 3월 북네트(Book-Net)라는 이름의 책 전문 정보 서비스로 시작하였으나, 두달 후인 5월 종합 PC통신 서비스로 확대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회사명을 딴 나우콤으로 불리다가 이용자들에게 1994년 9월에 사용자들에게 서비스 명칭을 공모하여, 1994년 10월 상용화와 함께 나우누리라는 서비스명을 사용하게 되었다.(서비스명의 뜻은 나, 우리 그리고 함께하는 세상이다.) 또한, 당시 상용 PC 통신망 가운데 가장 먼저 14,400 bps 속도의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지역별로 부산과 경상남도는 아이즈(Eyes), 전라도는 포커스(Focus), 대전과 충청도는 센티스(Centis)등의 통신망이 나우누리와 연계하여 서비스되었다. 이후 나우누리 서비스는 2006년 나우콤에서 분사한 나우에스엔티라는 회사로 이관되어 운영되었다. 1999년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PC 통신의 이용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빠른 속도로 쇠퇴하였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는 모뎀 접속은 제공되지 않았지만 telnet을 통한 VT 접속은 가능했다. 하지만 포털사이트의 확산과 트랜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나우누리는 하이텔에 이어서 2013년 1월 31일부터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3대 PC통신 중에서 천리안만이 유일하게 남게 되었다.


니밍… 천리안 빼고 다 망해버렸네요..ㅠㅠ 그때 당시 어린 층에서는 나우누리 그리고 하이텔은 대학생(?)들 그리고 천리안은 어르신들 쓰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ㅋㅋ go exit 를 향해 달려간 그 둘의 운명처럼 천리안의 모습도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빠따맞던 그 당시에 비하면 지금 더 풍족한 디지털 생활을 하는건 분명하군요, 분명 마음속은 그때가 더 행복했는데 당시 유행했던게 바로 사설 BBS였습니다. 집에다가 서버를 열고 호스팅까지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도메인은 전화번호겠죠.. 아 당연하잖아? 물론 전화선을 이용했기 때문에 1:1입니다. 무조건.  우린 동시간대에 너희 둘이 같이 있는걸 용납하지 않아.. 대부분이 누군가 접속해있어서 통화중일때는 접속이 안되는 ㅋㅋ 가정용 컴퓨터에서 만들었구요 지금은 호롱불이란 프로그램만 기억이 나네요 ㅋ 이렇게 불편한데 왜 접속하려고 매크로 걸어놓고 그랬을까요? 국내 대형 BBS에서는 정품 자료를 다운받을 수 없죠. But 사설 BBS에서는 각종 동급생하급생유작엘프 등 외에도 정품 게임을 4시간동안 올려놓고 하는 미친짓을 하는 공유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이용했던 건데요. 네. 모두 다 무료입니다. 전화비만 내세요 ㅋ 바로 이 사설 BBS가 현재 토렌트의 시초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아니 맞을지도 ) 좀더 나아가자면 집앞 게임가게에서 복사해주던 아저씨가 토렌트의 역사이겠죠 ㅋㅋ

  • 점점 환경에 맞춰서 진화해 가는 모습들을 보며 압축파일이란게 왜 생겨났으며
  • 포탈사이트는 어쩌다가 우연히 생긴것이 아니며
  • 동아리가 아닌 동호회가 널리 퍼진 시기도 이때였으며
  • 게임 한글화를 해주던 사람들도 생각이 나며
  • ATZ가 못미더워서 각종 수식어구를 붙인 모뎀 초기화 최적화 방법이 생겨났습니다.
  •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있겠죠?

당신은 1994년 ATDT 5로 시작하는 PC 월드를 기억하십니까? 언제 시간이 나면 돈독오른 프리챌, 혜화역 2번출구 위엄의 스카이러브, 한때 세계 3위에 회원 가입자를 자랑한 우리나라 개새끼들 문제로 도태되어간 아이러브스쿨, 그리고 갈라파고스 싸이월드까지 인터넷쪽도 한번 생각해보고 싶네요.ㅋ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사설 BBS – PC통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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